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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writers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 편집위원 문지혁 작가. 번역가. 장편소설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 소설집 『사자와의 이틀 밤』이 있다. 임현 작가.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중편소설 『당신과 다른 나』가 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정지향 작가.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소설집 『토요일의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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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libr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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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문제와 그 대책
이산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동영상 속에서, 화려한 반팔 셔츠 차림의 젊은 미국인 관광객은 모래알처럼 작고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구슬이 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를 뒤집어 쏟으며 아주 해맑게 웃고 있었다. 폭포처럼 주르륵 흘러내린 구슬들은 물이 얕게 깔린 새하얀 바닥 위로 철벅철벅 떨어져 산 모양으로 쌓였다가 이내 무너져 내리며 주변으로 쫘악 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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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족골은 어디인가?
이기호 롱보드를 배워보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은 올해 3월 초순의 일이었다. 왜 롱보드였을까? 따지고 보면 그것 또한 다 망할 팬데믹의 영향이었다. 직장으로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개강은 했지만 학생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무슨 시즌 말미 한화 이글스 좌측 외야석 풍경 같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데 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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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투게더
서장원 밖으로 나가기 직전, 나는 건물 층계참에 서서 창밖의 해주를 바라보았다. 해주는 구형 소나타에 기대서 있었다. 품이 넉넉한 검은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었고, 여름마다 고수하던 스타일대로 숱 많은 머리카락을 정수리 위로 틀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곧 해주가 나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줬다. 걱정했던 것처럼 놀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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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맨션
김혜진 10년 전, 순미가 처음 전화를 걸어온 그 밤을 만옥은 기억하고 있었다. 종일 세차게 비가 퍼붓던 날이었다. 늦은 밤에 걸려오는 전화가 대개 어떤 소식을 전해주는지 모르지 않았으므로 만옥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한동안은 빗소리와 차 소리 같은 것들이 뒤엉킨 소음 속에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집 내놓으셨죠?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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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선(線)
한정현, 『소녀 연예인 이보나』, 민음사, 2020+ 켄지 요시노, 김현경·한빛나 옮김, 류민희 감수, 『커버링』, 민음사, 2017 한설 소설집의 입구에 위치한 「괴수 아키코」를 펼쳐보자. 한때 시나리오를 공부했던 ‘그’는 돌연 행보를 바꾸어 1970년대 한국의 미디어 문화사에 대한 비평집을 출간한다. 김추자, 신중현, 김치캣, 어니언스, 투코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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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문장들, 곱씹어진 행간들
박유리, 『은희』, 한겨레출판, 2020+ 비마이너 기획, 하금철·홍은전·강혜민·김유미 글,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오월의봄, 2019 오혜진 사람 이름이 곧 제목인 책 앞에서는 일단 긴장한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강영숙의 『리나』, 금희의 「옥화」나 윤재호의 다큐멘터리 「마담 B」처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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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읽기 전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
셰릴 빈트, 전행선 옮김, 정소연 해제, 『에스에프 에스프리―SF를 읽을 때 우리가 생각할 것들』, arte, 2019+ 박문영. 『지상의 여자들』, 그래비티북스, 2018 손지상 1. 왜 「아기공룡 둘리」는 SF인가? 문제: ‘고양이, 두더쥐, 멧돼지, 바다코끼리, 박쥐, 흰긴수염고래, 사람’의 공통점은? 답은 ‘포유류’이다. 포유류라는 분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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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하나의 단단한 단위
유재영 “이거 어디에 나왔던 문장인지 기억나?” 제목을 붙이고 나서 내가 말했다. 동지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저은 다음 창밖을 바라보았다. 며칠째 비가 그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건 그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그가 아는 걸 나는 대체로 몰랐다. 그는 아는 걸 말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를 믿는다. 얼마 전 미셸 오바마는 결혼 28주년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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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벌레, 바이러스, 인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
김순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번진 이후 나는 두 권의 책을 샀다. ‘이끼’와 ‘미생물’에 관한 것이다. 이끼와 관계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귀로 듣는 것이다. 뿌리가 없고 몸과 머리만 있는 이끼는 잎사귀 안에 수많은 물주머니를 품고 있는데, 그 물주머니와 물주머니 사이를 흐르는 수로에서 아주 아름다운 소리가 들린다. 미생물은 30억 년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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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베트남전쟁, 그리고 나
이길보라 기억 하나 중학교 국사 시간이었다. 먼 옛날과도 같은 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 철기시대를 넘어 고구려부터 시작해 여러 나라가 한반도에서 세워지고 무너졌다. 이후,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했다. 근현대사 파트였다. 각 대통령이 어떻게 자리에 올랐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열거되었다. 베트남전쟁은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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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의 공모자들
김민섭 1 대학원에서 근대사를 공부한다는 건 얼마나 자료를 많이 보느냐의 싸움이었다. 나는 100년 전에 나온 잡지와 신문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여기에 와서야 알았다. 창간호만 나오고 사라졌거나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도 많았다.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나온 잡지와 신문이 1,000여 종이나 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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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남은 사람의 마음
정지향 도착했다는 기분 비가 많이 내렸다. 큰 우산을 골라 들고 나왔다. 조심해서 걸었는데 종내 운동화며 바지 밑단이 흠뻑 젖었다. 고려대에서 강의를 하는 선배에게 전날 미리 전화를 해두었다. 안암역에 내려 출구로 나오자 비를 피해 버블티 가게 천막 안에 선 선배가 보였다. 여느 때와는 달리 셔츠에 면바지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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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identity
‘에픽(epic)’이라는 단어는, 명사로는 ‘서사시, 서사 문학’, 형용사로는 ‘웅대한, 영웅적인, 대규모의, 뛰어난, 커다란, 광범위한’ 같은 뜻을 지녔습니다. 우리는 이 ‘epic’의 모음 ‘i’에 ‘i’하나를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이야기란, 서사란, 하나의 내[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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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창간 기념 특별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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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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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아주 귀여웠고 어렸기 때문에 인형을 보면 눈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 위해 눈알을 빼려고 했다
정지돈 운동은 그 대상을 없애도 존속하는 두려운 낯섦의 능력이다.—브라이언 마수미 엠은 누구인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나는 이러한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엠은 엠이다. 또는 엠은 엠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경험을 통과하며 엠이 누구인지 묻는 것이 중요해졌다. 질문은 형식적이거나 통속적인 행위가 아닌 시급한 필요와 진지한 탐구의 요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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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념 '에픽 온라인' 3개월 무료 구독 페이지
Ω ‘에픽 온라인’ 3개월 무료 구독 사용 방법 안내 1) 상단에 있는 ‘에픽 온라인 구독하기’ 배너를 클릭한다.2) 간단하게 회원 등록을 한다.3) 에픽 온라인의 다양한 서비스(전자구독, 오디오북 등)을 맘껏 즐긴다. * 이용 기간 : 등록일로부터 90일* 2021년 3월 31일까지 등록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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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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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奇談)
황정은 선인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얼굴이 싸늘해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밤이었다. 방범창과 외벽을 끊임없이 두들기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선인아. 선인은 숨을 삼킨 뒤 어, 하고 대답했고 즉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거실에 불이 켜 있었고 강희가 머리를 앞쪽으로 조금 기울인 채 적갈색 패브릭을 씌운 의자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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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
이주란 진짜 중요한 건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때 나의 기분이나 감정, 혹은 지금의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이나 느낌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거예요. 다른 사람의 감정이란 건 어느 정도 추측할 순 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자신이 걸어온 삶의 회로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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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제네바
송시우 1 스위스 제네바와 대한민국 인천 사이에는 직항 항공노선이 없다. 국제연합 사무소가 있는 인권의 도시, 제네바로 가기 위한 한국 인권 옹호자의 여정은 그만큼 길고 피로하다. 스위스 취리히를 거치거나 인접 국가의 도시를 한 번은 경유해야 한다. 인권증진위원회 부지훈 사무관과 한윤서 조사관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유 노선을 택했다. 독일 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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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의 나라
김홍 내가 「이인제의 나라」의 초고를 쓴 지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갑자기 이인제의 나라가 되었다는 내용의 「이인제의 나라」는 6년 동안 열다섯 번 남짓 고쳐 쓰는 동안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다. 「이인제의 나라」가 지면에 발표되었다면 그 순간부터 「이인제의 나라」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고할 필요가 없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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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책
김솔 * Libro Mudo : “저는 선생으로서 말하지 않는 책을, 학생으로서 냉정한 잉크병을 지녔지요.”-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수녀(Sor Juana Inés de la Cruz, 1651. 11. 12~1695. 4. 17). 그 책에 대해 소문을 듣거나 기적적으로 필사본을 직접 읽은 자들이라면 예외 없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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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다시 썼을 때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들
시노다 세츠코, 안지나 옮김, 『장녀들』, 이음, 2020+ 리베카 솔닛, 김현우 옮김, 『멀고도 가까운』, 반비, 2016 임지훈 0 내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왜인가. 온전히 기억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이제 나에게 그녀는 손톱 깊숙하게 박힌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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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들의 장소와 환대에 관한 이야기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아작, 2020 이지용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1] “어쨌든 너는 이 세상에 있잖아, 그런데 무슨 진실이 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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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고 익는 말들
브래디 미카코, 김영현 옮김,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다다서재, 2020+ 백온유, 『유원』, 창비, 2020 김화진 우리가 어떤 것을 믿으며 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각자의 신념 같은 것 말이다. 과거의 나는 신념 같은 건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굳은 생각 같은 건 없는 쪽이 좋다고. 견고하기보다는 유연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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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시
김대주 “달이랑 산책하고 올게.” 아내는 나와 함께 텔레비전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은 휴일이라서 나는 느긋하게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려고 앉았지만 아내는 금세 자리를 뜬다. 나에겐 드라마나 영화를 제외하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프로그램을 볼 수 없는 병이 있다. 10년 넘게 방송 일을 하면서 생긴 것인데, 채널을 0번부터 끝번까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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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노동자들
남궁인 응급실을 흔히 지옥이나 시장 바닥에 비유한다. 하루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목격한다면 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건과 사고가 모이는 곳이다. 인간들이 내뿜는 각종 불운과 불만, 증오와 오물 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응급실도 당연히 누군가의 일터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직장으로 택해 평생 출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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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밀덕이 되었나?
정명섭 덕후의 탄생 덕후의 사전적 혹은 통념상의 의미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뭔가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일본어 오타쿠(お宅 , おたく)에서 유래되었다. 당신 혹은 댁이라는 뜻이다. 언뜻 보면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호회 모임에서 상대방을 지칭할 때 오타쿠라고 부른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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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내력 만나기
최현숙 그녀를 만난 내 경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만 두 살도 되기 전부터 평생을 서울에서만 거주한 내가 28개월을 수원에서 살게 된 이유는, 한 여성 노인의 죽음을 밀착해서 관찰 기록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농담처럼 “부자 할머니는 어떻게 늙어 죽는지를 기록하려고”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진심이다. 혈연으로 엮인 김에 내 관심 사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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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과 뒷장 사이의 우주
문지혁 무엇이든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로마서」 15:4 책장 없는 서재 문을 열자 서재에는 책 기둥이 수북이 솟아올라 있었다. 네 책도 있을 거야. 필요하면 가져가라. 은퇴와 이사를 동시에 앞두고 있는 아버지는 책장을 먼저 처분했다고 말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에 본가에 들렀던 나는 예상치 못한 숙제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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